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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갈치조림이 1인당 10만 원짜리 바가지 음식이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해보니, 실제 단품 메뉴는 2만 5천 원에서 4만 원 선이 대부분이었고, 10만 원은 3~4인용 통갈치 세트 기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제주 갈치조림의 원래 양념이 고춧가루가 아니라 된장이라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된장 베이스와 구황 식문화, 제주 갈치조림의 진짜 얼굴

제주 갈치조림을 처음 제대로 먹어본 건 성산읍의 한 노포에서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빨간 국물을 예상했는데, 된장 특유의 구수한 향이 먼저 코를 치고 들어왔거든요. 알고 보니 이게 전통 방식이었습니다.

제주 갈치조림의 전통 조리법에서는 된장을 주요 양념으로 씁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의 환경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거 제주에서는 소금이 귀했고, 옹기(甕器) 기술의 한계로 수분이 많은 간장을 장기 보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옹기란 흙을 빚어 구운 전통 도자기 용기를 말하는데, 기밀성이 낮아 수분이 많은 액체 양념을 오래 보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연히 상대적으로 보관이 용이한 된장이 갈치의 비린내를 잡는 주역을 맡았고, 여기에 배추나 호박을 넣어 달큰하고 시원한 맛을 더하는 방식이 정착했습니다.

이 조리법은 제주의 구황 식문화(救荒食文化)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구황 식문화란 흉년이나 식량 부족 시기에 주식을 대체하거나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발전한 식생활 방식을 말합니다. 제주는 화산섬 특성상 논농사가 거의 불가능해서 전체 경작지의 98% 이상이 밭이었고, 쌀은 구경하기 힘든 귀한 곡물이었습니다(출처: 제주특별자치도). 보리, 조, 메밀이 주식이었고, 갈치조림은 그 잡곡밥 옆에 놓이는 소박한 찬(촐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는 갈치조림 국물에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이거나 채소를 듬뿍 넣어 양을 불리는 방식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니, 제주 갈치조림을 단순히 관광 음식으로 소비해왔던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음식 하나에 이렇게 두꺼운 시간의 층위가 쌓여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곳들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설탕이나 인공 첨가물 없이 천연 재료로만 감칠맛을 냄
  • 생물 갈치만을 사용하여 식감과 풍미를 살림
  •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아 갈치 본연의 담백한 맛이 살아있음
  • 배추, 호박 등 채소와 함께 조려 달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만들어냄

통갈치 퍼포먼스와 가격 논란, 어디까지가 진짜 제주인가

통갈치조림은 제주 음식 관광의 얼굴입니다. 팔뚝보다 긴 갈치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냄비에 담아내는 비주얼은 SNS에서 수없이 공유되며 하나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 퍼포먼스가 제주 고유의 공식(共食)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공식 문화란 여럿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공동체적 식사 방식을 뜻합니다. 제주에는 예로부터 경조사 때 돼지를 잡아 온 마을이 나눠 먹거나, 제사 음식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대형 전골 냄비에 갈치, 문어, 전복 등을 가득 담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통갈치조림의 형식은 이런 공동체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읽힙니다. 실제로 제주 갈치조림 전문점들이 갈치조림 주문 시 통갈치구이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관행은 넉넉한 인심이라는 제주의 식문화적 감수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격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이것을 무조건적인 바가지로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은갈치의 어획량은 기후 변화와 남획으로 인해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제주 근해 어업 생산량은 최근 수년간 변동성이 큰 상태입니다(출처: 해양수산부). 원재료인 생물 은갈치의 경매가 상승에 더해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물류비, 인건비, 임대료까지 더해지면 육지 식당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같은 퀄리티라면 오히려 제주가 더 싸게 먹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만, 관광객 입장에서 메뉴판만 보고 1인 가격인지 세트 가격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구성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업계 스스로 메뉴 안내를 명확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실제로 동완식당이나 바른갈치처럼 1인 주문이 가능한 가성비 식당들이 제주 식문화의 접근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런 소규모 노포들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제주 미식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칠맛(umami)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건 일본 과학자 이케다 기쿠나에였지만, 제주 된장 갈치조림에서 그 맛을 느꼈을 때 저는 이미 수백 년 전 제주 사람들이 이 원리를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칠맛이란 혀에서 느끼는 다섯 번째 맛으로, 된장의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글루탐산이 이 맛을 끌어올리는 핵심 성분입니다.

결국 제주 갈치조림이 대단한 이유는 화려한 통갈치 비주얼 때문이 아닙니다. 척박한 섬에서 먹을 것을 구하던 사람들이 된장 하나로 바다의 맛을 끌어올린 지혜, 그리고 그 소박함이 지금도 국물 안에 살아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제주를 여행하신다면 화려한 통갈치 세트도 좋지만, 현지인들이 조용히 즐기는 1인 갈치조림 정식 한 그릇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단순한 그릇 안에 제주의 시간이 더 많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 PDF: 제주의 음식문화, "제주 갈치구이 가격 논란…실제 가격과 진실은?" < Inside Facts < 기사본문 - 세상을 읽는 힘, 시사월드